아픔의 현재성이 나를 살린다.

입덧을 하는 아내의 모습은 그러나 완전히 실감되지 않는다.
아내 옆에 존재하며 실감하는 아내를 더듬으며 공감할 뿐이다.
요즈음 아내의 심해지는 입덧의 고통은 아내의 온 몸과 하루의 전부를 지배한다.
어찌 아픔을, 어찌 고통을 그들의 온 몸을 떠 안고 있는 사람 앞에서
아픔의 경중을 고통의 경중을 논할 수 있겠는가.
암의 아픔보다 체한 사람의 아픔이 적다고 말 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아픔의 현재성에서 벗어난 사람일 것이다.
아픔의 현재성 가운데 있는 사람은 온전히 그 아픔과 고통에 온 몸을 내어주고 있을 뿐이다.

과거에 아픔을 겪은 사람도 아픔의 과거는 가지고 있지만 현재성이 없으므로
쉽게 말 할 수 있다.
아픔을 겪어보지 못했지만, 듣거나 지켜본 사람도 간접경험은 있으나 현재성이 없으므로
쉽게 말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말 해 주었다.
"그것이 원래 그런 것이야."
"다 그 과정을 겪는 거야"
"아무리 아파도 죽지 않아"
덤덤한 표정으로 때론 웃으며 말해주는 그들의 현재성 없음에 위로가 되지 않았다.
결국에 모든 말이 쉬운 말로 변해버렸다.

너무 아파하는 아내와 병원엘 갔다.
지푸라기를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병원엘 갔다.
그리고 그 병원냄새 지독한 곳에서 한 의사가
아픔의 현재성에 동참해 걸어들어왔다.
그 의사는 남자이고, 임신을 해보지도 않았을 터이고, 입덧 또한 경험치 못한
아픔의 과거도 추억도 없을 터인데
그는 아픔의 현재성에 동참해 들어왔다.
그리고 근심스래 그렇게 말했다.
"불상해서 어떻게 하나......"
8.18.월



감동이를 기다리며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아내의 몸에서 생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나는 때때로 어떤 목사님이 내가 다니는 장신대에 와서는
이곳은 내게 자궁 같은 곳이라고 했을 때
참 낮설고 잘 그 마음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자궁에 있어본 적이 한번 있었겠지만, 난 그곳에 대한 기억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몸의 한 부분인 자궁에서 나도 40주를 살았겠지만,
그곳에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토기장이가 토기를 빗듯이 나의 형상이 하나씩 빗어졌겠지만,
도무지 머리 속으로, 보아서 들어서 안 그 자궁 속은 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몸에서 생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내의 몸에서도 자궁에서 바로 그 생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자궁에 집을 지은 생명은, 이내 곧 집과 함께 자라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은 희미한 형체와는 어울리지 않는
쿵쿵쿵하는 거인의 심장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내의 자궁에서 작은 심장은 만들어졌고
아내의 자궁에서 생명이 쿵쿵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온통, 생명의 울림만이 가득합니다.
아내의 심장의 울림과, 시작되는 생명의 울림이 쿵쿵쿵, 둥둥둥 어우러져 춤을 춥니다.

그리고,
아내는 자신의 몸에서 시작된 생명과 함께 입덧을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입덧은 입에서만 하거나 혹 잠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내장으로 하고, 모든 감각으로 하고, 온 몸은 입덧의 파도에 따라 흔들립니다.
입덧으로 규정되기에는 전인적인 이 증상은 임산부의 70~80%가 겪는 증상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생명이 신비하게 아내의 몸에서 시작되고,
아내의 몸은 그 생명을 겸허히 받아들였습니다.
아니, 아내의 몸과 마음 곧 전인은 그 생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기 위해
오늘도 온몸으로 입덧을 하고 있습니다.
잠을 자는 것도, 먹을 것을 먹는 것도, 좋은 옷을 입는 것도
내가 이루고 싶은 인생의 꿈과 목표도
보고싶은 영화한편과 향기로운 커피한잔의 여유도
시간가는 줄 모르는 소설책 한권과 가슴으로 읽히는 시 한편도
친구들과 만나서 나누는 마음담긴 수다와 위로도
아내는 성자처럼 새하얗게 떠나보내고
오직 시작된 생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오늘도
그의 전인으로 입덧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어떤 사람은 입덧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랑스럽게 사람들에게 나눔을 주었지요.
입덧을 하지 않고, 오히려 먹고 싶은 것도 잘 먹는 그녀의 임신생활은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한데, 입덧을 심하게 해서 변기를 안고 살았다던 석훈이 엄마는 금새 울상이 되어 아내에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입덧을 하지도 않는 사람이었지만, 그 옆에 있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찡해져 눈물을 감추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앞에 펼쳐졌습니다.
문득, 오늘 하루도 힘겹게 생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아내의 입덧이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단다...
주리는 자는 복이 있단다...
우는 자는 복이 있단다...

남편이 되었으니, 둘이 한몸이 되었으니,
주께서 밤에는 입덧을 나로 하여금 하게 해주셨다면
이렇게 날카로운 아픔을 느끼지는 않지 않았겠나
생각했습니다.
한몸이지만 입덧은 아내에게'만' 가득했습니다.
에이포지에 아내가 그려졌고,
나는 여백이 되었습니다.
주께서는 우리로 그렇게 한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나는 아내의 아픔의 여백이 되는 방법으로 아내와 한몸을 이루었습니다.
예수의 아픔에 배경이 되셨던 하나님도
그렇게 한몸을 이루셨던 것일까요......
2008.8.11.월


(시편3편)기도

시편 3편

(2008,6,18,수)

 


 

이른 아침 기도(새번역)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길 때에 지은 시]

1.주님, 나를 대적하는 자들이 어찌 이렇게도 많습니까?

나를 치려고 일어서는 자들이 어찌 이렇게도 많습니까?

2,나를 빗대어 “하나님도 너를 돕지 않는다”하고 빈정되는 자들이

어찌 이렇게도 많습니까?(셀라)

 

3.그러나 주님, 주님은 나를 에워싸주시는 방패,

나의 영광, 나의 머리를 들게 하시는 분이시니,

4.내가 주님을 바라보며 소리 높여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는 그 거룩한 산에서 응답하여 준십니다.(셀라)

5.내가 누워 곤하게 잠 들어도 또다시 깨어나게 되는 것은,

주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6.나를 대적하여 사방에 진을 친 자들이 천만대군이라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렵니다.

 

7.주님, 일어나십시오. 나의 하나님, 이 몸을 구원해 주십시오.

아, 주님께서 내 모든 원수들의 뺨을 치시고

악인들의 이를 부러뜨리셨습니다.

 

8.구원은 주님께만 있습니다.

주님의 백성에게 복을 내려 주십시오.(셀라)

 

*이른 아침 기도 이른 아침에 달콤한 잠도 달콤하지 않게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달콤한 잠도 삼켜버리는 다윗의 두려움과 걱정으로 인해, 오늘의 시편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다윗은 두려움과 걱정을 가지고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대책회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합니다. 걱정과 두려움이 가득한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그가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여 왕이 되겠다고 공격하였고 무력하게 쫒겨가는 다윗의 처참한 상황에서 그가 이른 아침에 기도 할 때, 한 줄기 소망의 빛이 다윗에게 비추어 집니다.

*천만대군이라 하여도 나는 두려워 하지 않으렵니다. 이른 아침 기도할 때 다윗에게 비추어진 소망의 빛이 폭풍 속에 다윗을 바꾸어 놓습니다. 폭풍을 바꾸어 놓는 것이 아니라 다윗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의 한탄스런 고백으로 시작하는 기도가 걸어가는 당당한 모습을 보십시오! “나를 대적하여 사방에 진을 친 자들이 천만대군이라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렵니다.” 나를 대적하는 자가 사방에 진을 치면, 모든 길이 막혀 이제 갈 곳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천만대군은 싸워볼 필요도 없는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문제는 이런 쥐구멍도 없는 곳에 고양이들에게 둘러쌓여있는 쥐가 당당하게 갑자기 고개를 드는데에 있습니다. 폭풍의 상황은 변하지 않았는데, 이른 아침 기도를 드리는 다윗에게 한줄기 소망의 빛이 비추어졌고, 그는 폭풍 속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렵니다.”

*이 몸을 구원해 주십시오. 구원하면 영혼 구원이 많이 생각납니다. 영혼이 구원받는 것이 구원이라는 이분법적 생각이 제 머릿 속에도 제 상황 속에도 얼마나 많이 있던지요. 구원은 그렇게 예수 믿고 영혼 구원 한번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오늘! 여기에! 이 상황에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폭풍 가운데에,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합니다. 다윗의 현실적인 기도를 보십시오. “이 몸을 구원해 주십시오!” 내 영을 구원해 달라는 내 영혼이 어쩌구 저쩌구의 고상한 기도와 표현은 없고 당장에 처한 내 몸을 구원해 달라고 다윗은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걸어가는 기도 다윗의 기도는 그렇게 전진하고 있습니다. 폭풍 속에서 하나님께 전진하고 있으며, 그의 기도는 한탄에서-고백으로-그리고 소망과 꿈과 찬양으로 이어집니다. 물론 폭풍은 아직 그대로이고 여전히 어두운 밤이지만, 기도하는 다윗은 맑은 날과 새 아침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기도는 걸어갑니다. 이것은 다윗에게만 있는 신비하고 놀라운 믿음의 기도가 아닙니다.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무릎꿇는 우리들의 기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기도하기 시작할 때에, 하나님 앞에 무릎꿇기 시작할 때에 그 기도가 걸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큼성큼 오늘 우리의 몸을 우리의 현실을 구원할 주님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절망은 절망이 아닌 것이 되는, 놀라운 구원의 순간입니다. 아, 우리에겐 구원이 필요합니다. 기도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제임스L메이스 라는 분의 말을 나누려고 합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따르며 하나님의 아들을 소망하는 모든 자들은 반드시 기도를 통해서 그들 인생을 완성할 수 있음을 시편3편은 보여주고 있다”

 

시편 3편으로 드리는 기도

주님, 주님을 믿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대적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우리를 치겠다고 일어서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들먹거리며 빈정대는 자들의 소리를 들으때면

억장이 무너지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 주님만이 나를 에워싸는 방패가 되어주심을 고백합니다.

나의 영광은 부모님도 칭찬받는 것도 좋은 학교도, 가정환경도 아닌

하나님 밖에 없음을 고백합니다.

나의 하나님은 내가 소리 높여 부르짖을 때에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셔서 오늘 아침에도 깨어나 하루를 맞이합니다.

주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시니 어떤 상황도 나는 두려워하지 않으렵니다.

 

나의 하나님, 오늘도 일어나셔서

이 불쌍한 몸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구원이 주님께만 있사오니

주님의 자녀를 불쌍히 여기시고

당신의 복을 내려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랑하는 고3들과 우리 청소년부 친구들이 기도로 주님의 구원을 경험하는 하루가 되도록 함께 기도합시다~^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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