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2편)Who is the King?

시편 2편

(2008,6,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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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선택한 왕(새번역)

1.어찌하여 뭇 나라가 술렁거리며,

어찌하여 뭇 민족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어찌하여 세상의 임금들이 전선을 펼치고,

어찌하여 통치자들이 음모를 함께 꾸며

주님을 거역하고,

주님과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이를 거역하면서 이르기를

3.“이 족쇄를 벗어 던지자. 이 사슬을 끊어 버리자”하는가?

 

4.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가 웃으신다.

내 주님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

5.마침내 주님께서 분을 내고 진노하셔서, 그들에게 호령하시며 이르시기를

6.“내가 나의 거룩한 산 시온 산에 ‘나의 왕’을 세웠다”하신다.

 

7.“나 이제 주님께서 내리신 칙령을 선포한다. 주님께서 이르시기를 ‘너는 내 아들, 내가 오 늘 너를 낳았다. 8.내게 청하여라. 뭇 나라를 유산으로 주겠다.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너의 소유가 되게 하겠다. 9.네가 그들을 철퇴로 부수며, 질그릇 부수듯이 부술 것이다’하 셨다”

10.그러므로 이제 왕들아, 지혜롭게 행동하여라.

세상의 통치자들아, 경고하는 이 말을 받아들여라.

11.두려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여라.

12.그의 아들에게 입맞추어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진노할 것이니,

너희가, 걸어가는 그 길에서 망할 것이다.

그의 진노하심이 지체없이 너희에게 이를 것이다.

주님께로 피신하는 사람은 모두 복을 받을 것이다.

 

*왕의 거역은 유죄, 고대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고대 국가들에서도 왕의 권한은 실로 대단합니다. 특히 이스라엘에서 왕의 의미는 신적 대리인의 의미였으므로 ‘왕 같은 제사장이요’하고 고백하듯이 왕은 신과 소통하는 사람이었고, 그러므로 왕의 자리는 신이 내려준 자리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의 군왕들의 위치도 이와 다르지 않는 신적 존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신이 세워준 왕이 신을 거역할 때에 일어납니다. 왕의 권세를 맡아 살아가다보니, 그것이 나의 권세가 되고, 신의 뜻과 마음을 무시한채 나의 뜻과 마음대로 정사를 처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런 왕의 거역에서부터 오늘 시편은 시작됩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가 웃으신다. 섬뜩한 말입니다. 진정한 왕 하늘 보좌에 앉으신 왕이신 하나님이 다 보고계신데, 눈 앞에 상황과 자기 권세에 도취되어 자기 뜻과 마음대로 왕의 행세를 하고 살아가는 왕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아무리 많은 잔치를 베풀고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고, 아무리 많은 권력으로 사람들을 죽이거나 호령할 지라도, 정작 하늘 보좌에 계신 하나님 앞에서는 비웃음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그 삶이 어떻게 옳은 삶이며 가치 있는 삶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하시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항하여 당신의 왕(6절)을 세우십니다. 바로 우리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찬양의 고백들로 세상의 왕이 아닌 예수님께서 우리의 왕이라고 고백했었습니까. 이제 하나님이 세우신 당신의 왕, 우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왕된 모습을 보여주실 것이며 진정한 다스림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WOW~! 이 얼마나 희소식이며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소식입니까.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왕이 우리를 다스리신다니! 거역하는 모든 왕들이 아니라!!!

*그런데 예수님의 삶은, 가히 충격적이기 까지 합니다. 예수님의 왕권의 성취하심이 일반 왕들과 사람들의 상상을 상당히 벗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요 섬기러 왔다고 하셨고,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십니다. 우리가 왕으로 인정하는 예수님의 삶은 기존의 왕들의 삶과는 판이하게 다른 낮은 삶, 섬기는 삶, 우리를 위해 죽으시는 삶이었습니다. 약한자들과 병든자를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을 찾아가시는 삶이셨고, 죄인들의 집에 찾아가 함께 식사하시며 머무는 삶이였습니다. 어느 왕이 왕궁이 아닌 죄인의 집에 거한단 말입니까.

*2008년을 사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우리들은 어떤 삶의 선택을 하면서 오늘을 살아가야 할까요. 분명한 것은 선택은 우리의 몫이고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왕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큰 바위 얼굴이라는 단편소설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고 존경하는 대상을 닮아간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우리가 세상의 왕을 동경하며, 위대한 꿈을 가지고 매진한다면, 우리는 분명 세상 왕의 부와 권세와 위엄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40평 아파트를 사겠다는 꿈을 가지고 매진한다면, 10년 내에 40평 아파트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을 따라 약한 자들과 병든 자들의 옆에 있겠다고,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가난하게 살며 섬기는 삶을 살겠다는 꿈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왕 예수님을 따라 그렇게 작은 예수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로욜라 이냐시오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중용을 유지해야 한다. 즉 우리는 질병보다 건강을, 빈곤보다 부귀를, 업신여김보다 명예를 단명보다 장수함을 더 좋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모든 다른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유일한 욕망과 선택은 우리가 조성된 목적에로 보다 잘 인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난 주일 갑작스런 병으로 입원해있는 사랑하는 한 동역자를 병문안 하면서 이 말을 나누었습니다. 치유해달라고 빨리 나서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지 못했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니, 예수님을 따라 살겠다는 사람이니, 질병보다 건강을 택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가난보다 부함을 택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단명보다 장수함을 택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진실을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이 사랑하는 친구는 그렇다고, 우리는 부귀에나 비천에 처할 수 있다고, 그저 능력주시는 주님 않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냐고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셨다고 했습니다.

*끊이지 않는 삶의 고비들 속에서,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작은 예수로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주님께로 피신(12절)해야 함을 본문은 전합니다. 세상의 왕과 권세, 사람들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의지하고 피신할 때에 행복이 시작될 것이라고 12절은 말합니다.

아! 주님만 의지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그 행복은 누리는 삶,

오늘 아침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초청하시는 그 삶이 아니겠습니까!

 

시편 2편으로 드리는 기도

그렇습니다. 주님. 주님을 거역하고, 스스로 음모를 꾸미고, 주님과 그 기름부음 받음 예수님을 거역하면서

 당신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이들은 비웃음꺼리가 될 것입니다.

주님, 그러나 한편 이런 모습들이 우리들의 마음에도 있음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 스스로 할 수 있고, 내 능력과 나를 의지하는 교만과 욕망을 버리하게 하시고

오늘 우리가 주님께로 피신하는 삶을 시작하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오늘 우리가 세상의 왕들의 가치와 꿈을 따르는 것을 포기하고

나의 왕 예수님의 가치와 꿈을 따를 수 있도록

주님 인도해 주십시오.

우리 주변에 병들고 약한 자들을 기억하고 위로하고 문안하게 하시고

우리 동료와 가족에게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길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오늘 친구를 위해 내가 대신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를 위해 주님의 사랑으로 대신 죽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주님께로 피신하오니

주님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십시오.

그것이 우리에게도 진정 행복임을 고백하오니

주님 우리의 삶을 인도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우리 청소년부 한명 한명의 소중한 꿈들을 주께서 주시기를 중보합시다.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특별히 우리 고3들이 젖은 옷과 비로 우울해지지 않고

 오히려 빗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고, 즐거운 수험생활을 할 수 있도록 중보합시다.

(시편1편)초대INV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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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편(*새번역 성경)

참된행복

1.복있는(행복한)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2.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3.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

4.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한낱 바람에 흩날리는 쭉정이와 같다.

5.그러므로 악인은

심판받을 때에 몸을 가누지 못하며,

죄인은 의인의 모임에 참여하지 못한다.

6.그렇다.

의인의 길은 주님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점을 한가지 말하라면 우리는 단연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심지어 아이언 맨에 나오는 악독 무기판매상도 결국 무기를 판매함으로 많은 수익을 얻어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의 차이가 형형각각이지만, 결국 모든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든 그렇게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 성경이 말하는 행복한 사람은 누구일까 돈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복은 돈을 많이 모으는 것입니다.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복은 숭고한 명예를 얻는 것입니다. 힘과 권력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복은 자기의 힘과 권력이 차츰 차츰 커져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정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복은 사람들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멋진 근육질의 몸매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행복은 헬스장에서 땀흘리고 샤워할 때일 것입니다.^ ^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우리들에게 행복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2절).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율법은 하나님의 교훈과 가르침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묵상한다는 말은 읇조린다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오직 주님의 가르침을 즐거워하여서 늘 생각하고 읇조리는 사람이 바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WOW~really~!

* 행복의 힘, 묵상 묵상은 생각하는 것이고 읇조리는 것입니다. 짝 사랑하는 그녀와 그이를 하루종일 생각하듯이 혼자 생각하면서 싱겁게 웃고 때론 가슴아파하듯이 생각하는 것이고 사랑한다고 읇조려 보는 것입니다. 묵상은 신앙 좋은 사람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무의식 중에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그것입니다. 다만 시편 1편에서 행복을 주는 묵상의 대상은 바로 율법-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가르침, 즉 율법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성경’입니다. 문헌화된 성경, 이 성경이라는 매게체를 통해 우리는 주님의 뜻과 길을 배우고 마음속에 간직하여 양심의 틀을 형성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마음과 양심이 결국 우리의 수많은 행동과 결정의 순간에 작용하여 우리의 오늘이 되는 것입니다.

* 초대합니다~!* 시편 1편은 우리에게 도착한 한 장의 초대장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가르침을 기대하며 받아들이라고 초대합니다. 시편을 성서로 읽도록 권하며 행복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에게 이제 그 잔치에 참여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의 공이 넘어 왔습니다. 6절에서 ‘길’이란 표현으로 상징하듯이 우리의 삶은 여행과 같습니다. 한걸음 한걸음 길을 걸어가는 여행과 같습니다. 우리의 여행길에 받은 초대장에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

 

* 시편1편으로 드리는 기도

주님, 우리도 복있는 사람 되게하여 주세요.

조급하고, 연약한 마음으로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도록,

죄인의 길에 서지 않도록,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도록,

주님 우리도 복있는 사람 되게 하여 주세요.

주님 율법의 맛을 알게하여 주셔서 주님 율법 묵상함이

우리에게 즐거움이 되게 하여 주세요.

그 즐거움으로 배우고,공부하며,사랑의 말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리하여

마침내 오늘 우리의 하루가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나와 또한 수능을 150일 앞둔 고3들을 위해 잠시 중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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