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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2 감동이를 기다리며

감동이를 기다리며


아내가 임신을 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아내의 몸에서 생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나는 때때로 어떤 목사님이 내가 다니는 장신대에 와서는
이곳은 내게 자궁 같은 곳이라고 했을 때
참 낮설고 잘 그 마음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자궁에 있어본 적이 한번 있었겠지만, 난 그곳에 대한 기억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몸의 한 부분인 자궁에서 나도 40주를 살았겠지만,
그곳에서 심장이 뛰기 시작했고,
토기장이가 토기를 빗듯이 나의 형상이 하나씩 빗어졌겠지만,
도무지 머리 속으로, 보아서 들어서 안 그 자궁 속은 잘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몸에서 생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아내의 몸에서도 자궁에서 바로 그 생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자궁에 집을 지은 생명은, 이내 곧 집과 함께 자라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은 희미한 형체와는 어울리지 않는
쿵쿵쿵하는 거인의 심장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내의 자궁에서 작은 심장은 만들어졌고
아내의 자궁에서 생명이 쿵쿵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온통, 생명의 울림만이 가득합니다.
아내의 심장의 울림과, 시작되는 생명의 울림이 쿵쿵쿵, 둥둥둥 어우러져 춤을 춥니다.

그리고,
아내는 자신의 몸에서 시작된 생명과 함께 입덧을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입덧은 입에서만 하거나 혹 잠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내장으로 하고, 모든 감각으로 하고, 온 몸은 입덧의 파도에 따라 흔들립니다.
입덧으로 규정되기에는 전인적인 이 증상은 임산부의 70~80%가 겪는 증상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생명이 신비하게 아내의 몸에서 시작되고,
아내의 몸은 그 생명을 겸허히 받아들였습니다.
아니, 아내의 몸과 마음 곧 전인은 그 생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기 위해
오늘도 온몸으로 입덧을 하고 있습니다.
잠을 자는 것도, 먹을 것을 먹는 것도, 좋은 옷을 입는 것도
내가 이루고 싶은 인생의 꿈과 목표도
보고싶은 영화한편과 향기로운 커피한잔의 여유도
시간가는 줄 모르는 소설책 한권과 가슴으로 읽히는 시 한편도
친구들과 만나서 나누는 마음담긴 수다와 위로도
아내는 성자처럼 새하얗게 떠나보내고
오직 시작된 생명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오늘도
그의 전인으로 입덧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어떤 사람은 입덧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랑스럽게 사람들에게 나눔을 주었지요.
입덧을 하지 않고, 오히려 먹고 싶은 것도 잘 먹는 그녀의 임신생활은 참으로 훌륭했습니다.
한데, 입덧을 심하게 해서 변기를 안고 살았다던 석훈이 엄마는 금새 울상이 되어 아내에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입덧을 하지도 않는 사람이었지만, 그 옆에 있는 것 만으로도 가슴이 찡해져 눈물을 감추었습니다.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앞에 펼쳐졌습니다.
문득, 오늘 하루도 힘겹게 생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아내의 입덧이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단다...
주리는 자는 복이 있단다...
우는 자는 복이 있단다...

남편이 되었으니, 둘이 한몸이 되었으니,
주께서 밤에는 입덧을 나로 하여금 하게 해주셨다면
이렇게 날카로운 아픔을 느끼지는 않지 않았겠나
생각했습니다.
한몸이지만 입덧은 아내에게'만' 가득했습니다.
에이포지에 아내가 그려졌고,
나는 여백이 되었습니다.
주께서는 우리로 그렇게 한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나는 아내의 아픔의 여백이 되는 방법으로 아내와 한몸을 이루었습니다.
예수의 아픔에 배경이 되셨던 하나님도
그렇게 한몸을 이루셨던 것일까요......
2008.8.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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